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란쌍 왕국 (문단 편집) === 분열 === [[파일:Laos_-_Division_territòriala_vèrs_1750_(vuege).png]] 분열 이후 라오스의 판도[* 위에서부터 루앙프라방 왕국, 비엔티안 왕국, 참파삭 왕국이다.] 라오스의 중흥을 이끈 쑤린야웡싸 국왕이 1694년에 사망하면서 란쌍 왕국은 분열된다. 쑤린야웡싸 왕에겐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들이 고위 관료의 아내와 간통을 해서 처형되는 바람에 왕위계승을 할 사람이 딱히 없었다. 이 혼란은 쑤린야웡싸의 손자가 왕위를 계승하고 쑤린야웡싸 왕의 사위가 섭정을 하게되면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1700년에 남부의 실력자에 의해 찬탈당했다. 이렇게 왕실이 무너지고 찬탈자가 활개치는 와중에 베트남으로 망명했었던 쑤린야웡싸의 맏형의 아들이자 쑤린야웡싸에게는 조카였던 싸이 옹 후에(Sai Ong Hue)가 비엔티안으로 돌아와 찬탈자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다. 쑤린야웡싸의 손자들이 살아있었음에도 그가 손쉽게 왕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후계자들이 각각 지방으로 도망가 있었기 때문. 가장 유력한 후계자들 중 하나였던 킹킷싸랏은 씹송 파나 지역으로 도망가 있었고, 다른 공주는 참파삭 지방으로 도피해 있는 등 도망간 지역들도 다양했다. 그와중에 싸이 옹 후에가 왕위를 계승했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킹킷싸랏은 곧바로 작은 군대를 꾸려서 루앙프라방으로 향했고, 싸이 옹 후에가 임명한 루앙프라방의 영주가 도망치면서 루앙프라방에 무혈입성했다. 킹킷싸랏은 루앙프라방에서 따로 대관식을 치르고 란쌍 왕국의 정당한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1707년 루앙프라방 왕국을 세웠다. 이로 인하여 란쌍 왕국은 1707년에 루앙프라방 왕국과 비엔티안 왕국으로 분열된다. 이어 1713년에는 또다시 남부의 참파삭 지방이 비엔티안에게 반란을 일으켜 떨어져 나가면서 결과적으로 란쌍 왕국은 북부의 루앙프라방 왕국, 중부의 비엔티안 왕국, 남부의 참파삭 왕국으로 분열되면서 공식적으로 무너진다. 참고로 이렇게 나누어진 란쌍 왕국 계열의 왕국들은 1779년에 [[태국]]이나 [[베트남]]의 속국으로 전락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했다. 특히 이중 비엔티안 왕국은 [[후에]]의 [[응우옌 왕조]]에게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는데, 1826년에 비엔티안 왕국의 마지막 군주인 아누봉 왕이 태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하고 결국 베트남에 합병되면서 완전히 멸망했다. 이원복 교수의 교양만화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 따르면 라오스 땅이 태국과 베트남에게 찢겨져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루앙프라방만 살아남았다. [[분류:라오스의 역사]][[분류:아시아의 왕국]][[분류:18세기 멸망]][[분류:태국-캄보디아 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